저스트 어 모멘트
젊음을 상징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의 청춘에도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용돈은 당시 내 동기들에 비해 많이 적은 편이었지만 적은 돈으로 맞춰 생활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과 같은 상황이었기에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고등학교라는 일방적 보호를 받던 시기가 끝나고 나니 나 자신의 가치를 찾고 싶었고, 그 하나의 수단으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그다지 길지도 많지도 않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집에서 공인해주는 아르바이트의 기간은 방학 때 뿐이었다. 기왕 경험하는 것 호프집에서 일해보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물론 오빠와 언니도 반대했다. 굳이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해야할 이유가 없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지만 깔끔히 포기했다. 사실 대학 시절에 일일호프와 주점은 줄기차게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특별히 경험을 안 한 셈도 아니다.
이런 내가 한 아르바이트 중 하나는 팬시점 점원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팬시점 앞에서 카드 판매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나중에 주인이 다른 팬시점을 인수하며 같이 이동했다. 그것에서 수당은 조금 올랐지만 당시 경기가 워낙 안 좋았기에 시간당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경험이기에 그도 즐거웠다. 한 달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비를 받을 때는 뿌듯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내가 선택한 경험에 의한 부수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필요에 의해 선택했어도 그랬을까?
시은이에게 아르바이트는 나와 같은 선택이 아니다. 작은 학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파파라치의 신고로 영업이 취소되면서 시은이의 집은 급격한 타격을 입게 된다. 시은이에게는 친구와 만나고 군것질할 정도의 적은 돈도 없다. 그렇기에 시은이는 방학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지만 생전 처음인 아르바이트이기에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시은이를 받아준 곳은 바로 [저스트 어 모멘트]라는 한글로 적힌 간판을 가진 된장 찌개 가게이다.
처음하는 아르바이트는 고되다. 정신도 없고 일도 못 하겠다. 그래도 다행히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주방 아주머니들이 좋다. 틱틱거리는 줄 알았던 소희 언니도 알고 보면 시은이가 일을 빨리 배울 수 있도록, 일 못한다고 해고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고, 아이를 속이고 일하고 있는 수빈이도 의지가 된다. 그런데 가슴 떨리게 하는 남학생도 하나 등장했다. 정운이라는 그 이름의 남학생은 일도 잘 하고 싹싹해서 시은이의 마음을 떨리게 한다.
두근거리며 아르바이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시은이가 물어보지 못했던 알바비는 최저 임금보다 적은 돈이다. 그 돈을 주급으로 받아 부모님의 선물을 사 드렸지만 현실의 걱정에 빠진 부모님은 시은이가 바라는 반응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정운이가 첫 주급을 받게 되었을 때 정운이는 최저임금이 아닌 시급에 반발을 하게 되는데....
글 속에서 정운이는 자존감을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 속에서 약자에게는 자존심을 지킬 권리가 사라지고 있다. 탐욕과 편법을 아는 어른들의 모습이 당연해지고 있고 자라는 아이들도 자신의 탐욕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편법을 저지르는 것도 그다지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어렵고 힘들기에 인간으로의 존엄을 더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프고 힘든 일을 겪는 청소년들은 순탄하게 그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보다 더 보호받고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 의해 자존감을 잃어버린 힘없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기를. 이 책의 시은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 시은이로 머물지 않고 용기내어 부모님께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아침독서신문 추천도서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12 청소년출판협의회 추천 우수도서
나의 그녀 , 나 , 지독한 장난 에 이은 이경화 작가의 네 번째 청소년 소설.「탐 청소년 문학」첫 권으로 도심의 식당, ‘저스트 어 모멘트’에서 최저 임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말이 없던 시은이 자신의 삶에 물음표를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시은이 삶에 결코 ‘잠깐’이 될 수 없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작가는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 내는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완성시켰고, 딴죽을 걸고 싶을 정도로 희망에 찬 이 아름다운 영혼들은 책속에 그대로 스며들었다.